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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진실 앞에서

거짓과 진실 앞에서  허영심이 많은 왕이 있었습니다.왕은 자신을 위대한 시인이라고 생각했고이를 잘 알던 주변 신하들은 마음에도 없이왕의 시를 칭송했습니다.달콤한 신하들의 칭송만 계속 듣던 왕은점점 자만심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그러자 이제는 존경받던 당대 최고의철학자에게도 인정받고 싶었고, 결국 철학자를자신의 궁전으로 불렀습니다.그리고 그 앞에서 자신이 지은 시를 낭독했고어떤지 물었습니다.하지만 철학자는 다른 신하들과는 다르게왕의 시가 너무도 형편없다며 솔직하게 비평했습니다.왕은 자신의 기대와 달리 혹평으로 말했던철학자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그러나 철학자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왕의 어리석은 판결에 탄원하는 글을 올렸고,왕도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이젠 바른말을 하겠지!’왕은 철학자를 석방하는 조건으..

옛 친구

옛 친구 어느 유명한 탈렌트가 스케줄 때문에 할 수 없이변두리 지저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에 같은 탈랜트 학원에서몇 번인가 함께 무대에 오른 일이 있던 옛 친구가거기서 접시를 나르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 아니, 자네가 이렇게 지저분한 식당에서 일을 하다니!" 그러자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 하지만 난 여기서 먹진 않는 다네! "

나비의 인내심

나비의 인내심 영국의 한 연구실, 식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가고치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나비의 모습을관찰하고 있었습니다.바늘구멍같이 작은 구멍을 뚫고 고치에서빠져나오기 위해 꼬박 한나절을 애쓰고 있었습니다.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느냐 마느냐는생사가 걸린 문제였습니다.고통과 인내를 뒤로하고 고치를 뚫고나온 나비는 활기찬 날갯짓을 하며세상으로 날아갔습니다.개중 다른 나비들과 달리 고치를쉽게 뚫지 못하는 나비도 있었는데윌리스 박사는 이를 안쓰럽게 여긴 나머지나비가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고치의 옆 부분을칼로 살짝 그어주었습니다.나비는 박사의 도움을 받고 고치에서 빠져나왔지만,혼자 힘으로 고치를 뚫고 나온 나비와는 달리무늬나 빛깔이 곱지 않고 날갯짓에 힘이 없었습니다.그렇게 몇 번의 날갯짓을 시도한 나비는결..

단양 석문

2024. 05. 22. 단양 석문 단양 석문은 단양팔경의 하나로 2008년에 명승 제45호로 지정되었다. 석문은 도담삼봉에서 남한강 상류 약 200m 지점 강변에 우뚝 서 있으며, 언덕 아래로 커다랗게 구멍을 뚫은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돌문이다.이는 석회암이 오랜 세월동안 풍화되면서 석회동굴이 붕괴되고 남은 동굴 천장의 일부가 구름다리처럼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문은 석회암이 풍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암석의 형태가 마치 돌로 만든 문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양 도담삼봉

2024. 05. 22. 단양 도담삼봉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도담삼봉과 석문.시원한 막국수도 맛있었어요.단양군 남한강 상류 가운데에 세 개의 봉우리로 된 섬. 단양팔경 중 하나로, 2008년 9월 9일에 명승 제44호로 지정되었다.물 위로 드러나 있는 봉우리들이 이루는 절경이 아름답고 독특하여 관광지로 많이 찾는다. 단양팔경 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편이다. 가장 높은 가운데 봉우리를 장군봉, 북쪽 봉우리를 처봉, 남쪽 봉우리를 첩봉이라 한다. 장군봉은 처봉을 등지고 첩봉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되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남편이 아들을 얻고자 첩을 들여 아내가 돌아앉은 것이라고 한다. 각각 아버지봉, 아들봉, 딸봉이라고도 한다.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처음에 1766년 단양군수 조..

단양 사인암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시간을 맞춰 단양의 관광지를 몇군데 둘러 보고 가기로 했다.제일 먼저 쉽게 볼 수 있는 사인암으로 가 보기로 했다.단양팔경 중의 하나인 사인암은 역동 우탁에 의해 명명된 경승이다. 고려 말 정주학의 대가였던 우탁은 단양군 현곡면 적성리에서 태어났다. 충렬왕 4년에 항공진사가 되어 관직에 나간 후 여러 직에 보임되었다.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와 통간하자 당시 감찰규정이었던 역동은 흰 옷을 입고 도끼를 든 채 궁궐에 들어가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을 때는 목을 쳐도 좋다는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군주의 비행을 직간한 역동의 기개와 충의를 본 충선왕은 부끄러운 빛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우탁은 강직한 성품을 지닌 선비였다...

단양 장회나루 충주호유람선

2024. 05. 22. 단양 장회나루 충주호유람선 우리는 다시 제천을 벗어나 가까운 곳에 있는 단양 장회나루로 가서 충주호유람선을 타고 구담봉, 옥순봉 등의 멋진 풍경을 즐겨 보기로 했다.유람선 매표소에 도착하니 곧 출발할거라고 빨리 가서 타라고 한다. 시간을 많이 번 기분이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승선을 하고 유람선을 출발을 했다. 유람선은 장회나루에서 옥순대교 아래쪽 까지 갔다가 돌아 오는 것인데 시간을 약 1시간 정도 소요 되었다.

옥순봉출렁다리

2024. 05. 22. 옥순봉출렁다리 아침 일찍 일어나 근처에서 백반으로 식사를 맛있게 하고 옥순봉출렁다리로 이동 하였다.옥순봉 출렁다리는 2021년 10월 22일 개장하였으며, 길이 222m, 너비 1.5m의 연결다리 및 408m 길이의 생태탐방 데크로드와 야자매트로 이루어진 트래킹길까지 더하여 호반과 옥순봉을 둘러볼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제천 의림지

2024. 05. 21. 제천 의림지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는 의림지!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이다. 위의 두 저수지와는 달리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여전히 관개농업에 이용되고 있다. 삼한시대(원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는 말도 있고, 더 나중의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는 말도 있다. 제천시에서는 삼한시대 축조설을 밀고 있다. 일단 2,000년 전에도 호수가 있었다는 증거는 나오는 중. 제천 의림지가 현재의 형태와 비슷하게 형성된 것은 "기원후 8세기"로 추정된다.제방은 시대에 걸쳐서 조금씩 높아졌다고 한다. 제방축조에는 몽촌토성, 풍납토성 등과 같이 부엽토공법이 이용되었다고 하며, 요즘과 같은 토목 건설 장비도 없던 시절에 큰 제방을 만든다는 건 매우 어려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