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면 뭘해…춥고 배고픈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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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전통문화인 한지 제작의 맥을 잇는 데 평생을 바친 류행영씨(75)의 첫 마디다. 류씨는 국내 유일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이자 노동부 지정 ‘전승기능자’이다.
말복인 9일 오후 경기 용인시 외곽의 류씨 공방. ‘전통공예산업진흥법’의 입법화를 앞두고 실태조사를 위해 전통공예 공방을 찾은 탐방단에 류씨는 “공방을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말했다. 이날 탐방단은 ‘전통공예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여야 의원 26명(대표발의 박찬숙 의원) 중 일부 보좌관, 문화관광부·문화재청 관계자, 이칠용(공예예술가협회)·박찬수(중요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이사장 등 10여명으로 구성됐다.
탐방단은 공방에 들어서면서 당황했다. 2개의 정부 부처가 인정한 장인이란 번듯한 명패가 부끄러울 정도로 공방은 열악했기 때문.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말이 연이어 나왔다. 비닐하우스 작업장은 희미한 형광등, 힘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속에 닥나무 껍질 등 한지 재료가 어지러이 널려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전통적으로 만든 우리 한지를 찾는 사람이 적어. 세계 최고의 종이인데…문닫게 생겼어.” 불편한 다리에 눈까지 침침해진다는 류씨는 “전통한지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지 판매로는 생계유지마저 힘든 류씨. 그러다 보니 후계자도 나서지 않는다. 옆에 있던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차우수이사는 “한지시장의 95%가 수입된 한지거나 수입 닥으로 제작된 실정으로 국가 차원의 대책없이는 조만간 전통적 한지문화는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이날 탐방단은 서울·수도권의 8개 전통공예 공방을 발품팔아 찾아다니며 장인들의 얘기를 청취했다. 국전 특선, 동아공예대전 은상, 일본 가나자와 국제디자인전 금상 수상 등 화려한 수상이력을 가진 건칠공예가 정창호씨(59)의 공방은 놀랍게도 경기 파주 외곽 비닐하우스였다. 정씨는 “생계문제로 제자들이 지금 페인트공, 목수일을 하고 있다”며 “안타까운 정도가 아니라 환장할 일”이라고 전했다.
서울 성수동 자택 지하공방에서 소뿔을 다듬던 화각(畵角)장인 이정천씨(68). 이씨는 “먹고 살 것 생각하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많다”면서도 “전통문화의 맥이 끊어질까봐 손을 떼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인들의 삶이나 생각은 비슷했다.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장인들의 혼을 담은 ‘명품’은 수요가 적고, 판로마저 원활치 않아 생계유지조차 힘들다. 그러다보니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후계자가 없다. “먹고 살기 위해”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어려운 실정인 데다 ‘전통의 현대적 계승’의 의미는 잘 알지만 ‘그림의 떡’이다.
결국 이미 ‘바디장’ 등 우리 전통문화의 맥은 끊어졌다. 이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못하는 사회, 문화재청 등 한 개 부처로는 지원의 한계가 명확한데도 범국가적 차원의 지원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 등이 주요 이유다.
장인들은 대안도 쏟아냈다. “부자가 아니라 그저 작품활동을 통해 맥이 끊기지 않는 수준의 판로 지원”은 한 목소리.
이 외에 “일정 작품은 국가가 소장”(전통인형작가 이승옥) “일본처럼 전통공예인들을 위한 공방촌 설립”(정창호) “학교 교육과정에 전통공예 도입”(풀짚작가 전성임) “장인이 존경받는 사회의 인식”(나전칠기작가 박경옥) “외제 명품과는 다른 전통공예작품의 명품 인식 확산”(전통칠기작가 김운억) 등이다.
장인들은 이날 ‘전통공예산업진흥법(안)’에 대해 큰 기대를 보였다. 박찬숙 의원은 “민족정서와 지혜가 함축된 전통공예는 실용성·예술성을 지녔다”며 “국가 경쟁력 확보 등을 위해선 전통공예의 기술보전과 산업적 활용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칠용 이사장은 “이 법률안은 오는 21일 임시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라며 “누구든지 현장을 보면 법률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새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장’인 이영수씨는 “전통문화의 맥이 끊어지면, 이것도 수입할 거냐”고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출처: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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