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글/좋은 시

[스크랩] @ 오아시스 그녀

야생초요 2006. 9. 23. 08:32


오아시스 그녀 / 달수니


내 몸엔 고삐가 생겼고 그녀는 고삐를 쥐고 슬픈 눈으로 말합니다. 종교라도
믿는 게 어떻겠니. 믿을 수가 없었죠. 믿기지 않았어요. 두 개의 링거를 꽂은
나는 낙타입니다.

며칠 동안 악몽을 꾸었죠. 오아시스가 나타나고 달려가면 신기루로 사라지는.
내 몸의 수분이 달아나고 덕분에 머리칼이 다 빠져버린 아침. 괜찮아, 괜찮아,
그녀는 털모자로 악몽까지 덮어 주었죠.

사막엔 네 마리의 여우가 살아요. 지난밤 한 마리의 낙타가 끌려갔다는 소문이
귓속말로 전해졌죠. 사방에서 녀석들이 모래치마를 펄럭이면 그녀는 고삐를 단
단히 쥐고 책장을 넘기듯 조심스레 나를 읽지요.

말 수가 없어진 나의 표정을 그녀는 놓치는 법이 없어요. 눈가에 달린 두려움
의 농도를 보며 배에 매단 오줌통을 확인하죠. 주름 잡힌 손가락이 가득 고인
슬픔을 비우지요. 고개를 흔들어 고삐를 풀면 그녀는 조용히 등을 돌려 슬픔을
삼키지요.

바람의 정면을 쳐다 볼 수가 없던 나는, 그녀의 등에 업혀가는 엉터리 낙타.
하지만 알아요. 네 마리의 여우가 두려운 그녀, 언제부턴가 쭈글쭈글한 젖가슴
안쪽 깊이 늘 싱싱한 눈물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밤 나의 침대에 기대어 잠든 그녀의 얼굴에 화장을 해요. 거뭇한 눈 밑
주름마다 야자수를 심고요. 깊게 패인 볼 웅덩이에 뚝뚝 떨어지는 별빛을 모아
푸른 연못을 만들어요.

그녀의 가슴에서 물소리가 들려와요. 입술이 타고 목이 말라요. 바가지로
철철 그녀를 떠먹어요. 보세요, 창밖 하현달이 웃고 있어요
.



출처 : 파란 대문...빨간 우체통
글쓴이 : 글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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