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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당신을 만났습니다

야생초요 2006. 9. 24. 05:28
내가 당신을 만났습니다
                                김 종 제 
     두 팔도 두 다리도 없는 
     나에게 누군가 활짝 핀 
     꽃길을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
     명령으로 시간을 밟고 갑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햇불처럼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그 길에서 눈먼 당신을 만났지요 그 길에서 귀먼 당신을 만났지요

겨울강을 덮고 있던 두꺼운 얼음이 문득 깨어졌지요 산을 가로막고 있던 안개가 어느새 사라져 버렸지요

새들은 둥지를 버리고 날아가버렸고 꽃들은 비수를 들어 가슴을 갈라 심장 속에서 붉거나 노랗거나 희거나 제 마음의 편지 서로 읽어 달라고 내게 꺼내 놓았습니다

다리도 없이 험한 산길 걸어온 봄은 팔도 없이 깊은 강물 헤엄쳐 온 봄은 나보다 먼저 앞질러 가 나를 가로막고 있었지요

산사태 나면서 내가 부서지고 있었지요 장마 지면서 내가 무너지고 있었지요

말없이 당신을 헤아리다가 몸 같은 길을 버리고 가다가 이것이 내 마음이다 하고 가슴을 가릅니다 복사꽃 하나 꺼내 듭니다

내가 당신 속으로 걸어가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군요

꽃비가 내리고 강물이 흘러가더니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활짝 피었습니다

 
 
 
출처 : 이쁘고 고운 마음으로
글쓴이 : 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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