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보물 및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상

야생초요 2006. 7. 2. 14:23

금동미륵보살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보물 제643호)

    이 불상은 높이가 11센티미터로 작은 크기이나 신라의 반가상으론 매우 희귀한 예에 속한다. 오른손을 구부려 뺨에 대고, 넓은 얼굴에는 미소가 서린 불상이다. 비록 머리와 신체의 균형이 약간 조화롭지 못하나, 머리에 커다란 오판화형보관(五瓣花形寶冠)을 쓰고 있어 위엄과 자비를 더한다. 특히 길게 늘어뜨린 검은 칠을 한 머리카락은 매우 특이하고 금도금이 아닌 금박을 올려 귀중한 평가를 받았다. 오른쪽 다리는 엄정하게 가부좌를 틀었고, 상반신과 허리 부분을 장식한 곡선은 반가상다운 절제된 미가 넘쳐흘러 신라인의 높은 예술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불상의 머리 뒤쪽에는 광배를 꽂았던 돌기는 있으나 광배는 없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로 생각에 골똘히 잠긴 모습은 어찌 보면 깊은 열락의 부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지혜를 얻고자 번뇌하는 초심자의 얼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영락없이 수더분하고 고지식한 시골 청년의 모습이다.


   고지식한 시골 청년의 모습


   1970년 어느 날이다. 회현동에 사는 김동현의 집에 전화 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여보게, 빨리 와 주게. 응?” 성북동에 사는 이병각(李秉珏)이 급히 김동현을 부르는 전화였다. 그는 금속 유물이 집으로 들어오면 부리나케 김동현을 불러 감정을 의뢰하였다. “무슨 일입니까?” “와 보면 알아. 빨리 와 줘야 돼.” 성북동에 도착하자, 이병각은 김동현의 소매를 잡아끌며 옆방으로 데려갔다. 그 때 사랑방을 쳐다보니 흰옷을 입고 귀티가 흐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이 물건 좀 보게.” 이병각이 내 놓은 불상을 보고 김동현은 깜짝 놀랐다. 그로서도 처음 보는 신라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었다. 김동현도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불상을 몇 개 가지고 있었으나 7세기의 신라 반가상은 없었다. 신라 시대에 반가상이 제작되었는지 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비싸게 주고라도 사세요.“ 숨이 막힐 듯 귀해 보이는 불상이었다. 불상을 잡은 김동현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왜? 좋은 건가?” “불상 중에서 반가상은 매우 희귀하고, 또 신라 것은 더욱 귀합니다. 반가상 자체도 귀한데 신라의 것이라면 바로 지정급입니다.” 김동현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음! 그렇게 귀한 것인가. 만약 내가 사면 곧 자네가 입수할 건가?” 불상에 확신이 없던 이병각은 장사 속으로 돌아섰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예.” “알겠네. 그럼 기다려 봐.”

   이병각은 사랑방으로 건너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때이다. “김 선생, 이쪽으로 건너오지.” 가격 흥정이 끝났는지 이병각이 김동현을 소리쳐 불렀다. 방안으로 들어 간 김동현은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서 출토된 불상입니까?” 그러자 이병각이 말을 가로막았다. “경주의 불국사에서 동쪽에 있는 해변 가 어느 석탑이래.” “필시 다른 물건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 여자는 몹시 당황하는 눈빛으로 이병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이병각은 뒤에 감추어 두었던 상아로 만든 매병 모양의 사리함을 넌지시 꺼내 놓았다. 김동현의 눈에서 다시 광채가 일었다. 사리함은 높이 7.2센티미터로 상부는 완전히 매병의 모습이고, 아래쪽은 갑자기 가늘어지며 밑부분은 삼중의 둥근 받침을 만들어 세워 놓을 수 있도록 하였다. 나무로 깎아 만든 뚜껑을 여니, 작은 유리구슬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그 중에는 둥글고 커다란 사리(舍利)도 한 개 있었다.

   사리함을 든 김동현의 손이 조금보다 더 떨렸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사리함으론 처음 보는 것이다. 여인을 밖으로 내보낸 이병각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김동현을 잡아끌었다. “이게 그렇게 귀한 것이라며?” 비싼 값에 넘기기 위해 김동현이 한 말을 곱씹는 중이다. “그렇습니다.” “그럼 자네는 사겠어?” “그러지요.” “그래. 그럼 600만 원만 내.” “예?” 김동현은 깜짝 놀랐다. 분명 그 여자에게 60만 원을 주는 것을 보았는데, 그 자리에서 600만 원을 달라니 대낮에 코 베가는 위인이요, 세상이었다. “귀한 것은 귀한 값을 내야지. 안 그런가?” 물건으로 보면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불상이다. 집으로 불상을 가져온 김동현은 불상에 낀 이 물질을 제거하며, 부드러운 솔로 닦고 예리한 도구로 흙을 제거했다. 금세 금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특히 이 불상은 금을 도금한 것이 아니라 금박을 올린 수법을 썼다. 기와집 5채에 해당하는 물건의 값을 치르면서 김동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물건을 사면 도통 팔 줄을 몰랐던 그라, 친척까지 동원해 가며 어렵게 잔금을 맞추고자 애를 썼다.


   방석 밑에 3천엔을 놓아두었어요


   불상을 입수하고 이틀이 지났을 때다. 일본의 불상 권위자 마치하라가 집으로 찾아 왔다. 그는 일본에서 최고의 금속 유물 감식가로 통하던 인물로 김동현이 희한한 불상을 입수했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 온 것이다. “한번 봅시다.” 마치하라의 독촉에 김동현도 어쩔 수 없이 불상을 내 보였다. 마치하라는 마치 부처님을 친견하듯이 엄숙하게 불상을 대했다. “처음 보는 귀한 불상입니다. 특히 까만 머리카락은 너무 멋있어요.” 마치하라는 계속 침을 삼키며 감탄을 해댔다. 마치 불상에 빠져든 사람처럼 이리 보고 저리 돌려보며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정말 이 나라 불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특이해요. 뭐랄까 너무 소박하고 소탈하여 금방 재미가 느껴져요. 그에 비해 일본 불상은 요란하기만 하지 도대체 감흥이 없어요.” 김동현도 흐뭇한 표정을 띠며 불상을 건네 받아 훑어보았다. “김 선생, 이 불상 나에게 양보하시죠.” “무슨 말씀을?” 김동현이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일찍이 일본 사람에게 물건을 팔아 본 적 없는 그였고, 또 팔 마음도 전혀 없었다. “이 불상을 집에 모셔 두고 평생을 살고 싶네요.” 간절한 애원이 담긴 말이었다. 마치하라는 목소리까지 가늘게 떨렸다. “….” ‘서로가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나는 물건을 팔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또 당신은 일본인이잖아’ 김동현은 이미 속으로 거절하고 있었다. “가격이라면 사신 금액에 10배를 드리겠어요.” 잔금을 치르기 위해 고생한 생각을 하면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온갖 사정을 해도 아직 잔금이 모자라 걱정이 태산 같았던 때이다. “….” “김 선생, 제발 나에게 양보하세요. 그 동안 정도 있고, 또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닙니까?” “글쎄요.” 김동현은 말미를 흘렸다. 어느 누가 이틀 전에 산 물건을 열 배를 얹어 주겠다고 하는데 팔지 않겠는가? 항우 장사라도 돈 앞에는 당해 내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다. “제가 열 배를 주겠습니다. 적으십니까?” 마치하라는 조바심이 나서 말투가 빨라졌다. “어렵겠습니다.” ‘좋소’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부인과 마치하라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렇다면 얼마 동안 제가 간직하고 있다가 돌려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단호한 이 한마디에 마치하라는 한동안 깊은 슬픔에 빠져 울먹였다. 방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김 선생의 집념에는 그저 고개가 숙여집니다. 훌륭하십니다.” 체념의 빛이 얼굴에 떠오르며 마치하라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며칠 후, 마치하라에게서 편지가 왔다.

   …어려운 부탁의 말씀을 올려 죄송합니다. 워낙 보고 싶어 허튼 짓을 했습니다. 제가 앉았던 소파 방석 밑에 3천 엔을 놓고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를 위하여 그 돈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 주실 수는 없는지요…

   편지를 읽던 김동현이 급히 마치하라가 앉았던 방석을 들추어보았다. 그러자 그 속엔 진짜로 3천 엔이 놓여져 있었다. 김동현은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그 정성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불상은 금속 전문가 마치하라의 애환을 담은 채 1978년 12월 7일에 보물 제643호로 지정되고, 1982년 이병철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국보 3점, 보물 4점과 함께 다수의 금속 유물을 7억 원에 양도할 때에 호암 미술관으로 넘겨졌다. 현재는 호암 미술관에 진열되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참고: 김동현씨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