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03. 강진 무위사
무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하였고, 875년(헌강왕 1)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고 개칭한 뒤, 많은 승려들이 주석하였다. 905년(효공왕 9)선각(禪覺)이 3창하였다.
1407년(태종 7)무위사가 천태종(天台宗) 17자복사(資福寺) 중의 하나가 되었다. 1430년(세종 12) 극락전을 지었는데, 이 건물은 현재도 남아 있다. 1555년(명종 10)태감(太甘)이 4창하면서 무위사라 하였다.
이때의 당우는 본절이 23동, 암자가 35개로 모두 58동에 이르는 대찰이었으나, 그 뒤 화재 등으로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당우는 최근까지만 해도 극락전·명부전과 요사채 뿐이었으나 1678년(숙종 4)에 극락전 앞에 괘불대를 조성하였고, 1739년(영조 15)에는 해초(海超)·극잠(克岑) 등이 전각을 보수하였다.
1975년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과 해탈문(解脫門)·봉향각(奉香閣)·천불전(千佛殿)·미륵전(彌勒殿) 등을 중건하였으며, 1991년에 산신각을 짓고 1995년에 동쪽 요사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중 극락보전은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벽에는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 뒤의 가로 4m, 세로 7m 크기의 후불탱화만이 남아 있고, 28점은 보존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한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49일째 되는 날, 주지가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니 파랑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마지막으로 후불탱화의 관음보살 눈동자를 그리고 있었는데, 새는 인기척을 느끼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후불탱화의 관음보살상에는 눈동자가 없다.
이 밖에도 선각대사변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는 보물 제507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옆에는 석탑형식을 취한 보기 드문 부도가 있는데, 선각대사변광영탑(先覺大師遍光靈塔)으로 명명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미륵전 안에는 고려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 있다.
▲ 사천왕상
▲ 사천왕상
▲ 보제루
▲ 극락보전
1983년 해체, 복원 공사 중 중앙 칸에서 발견된 명문(名文)에 따르면 정면 3칸에 측면 3칸인 이 건물은 조선 초기인 세종 12년(1430)에 효령대군이 지은 것이다. 조선 초기에 건립된 주심포식의 대표적인 불전으로 맞배지붕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알맞은 평면 구성에 현저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우고 간결하고 아름다운 조각의 공포를 얹어 가구를 짰는데 그 수법이 고려기 양식보다 세련미가 있다.
고려 말기 건축에 곡선재를 많이 쓴 데 비하면 이 건물은 직선재를 써서 측면관이 간결하면서도 짜임새가 균형을 잘 이루었고 조선 초기 양식을 어느 건물보다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어 주목받는 건물이다.
김제 귀신사의 대적광전,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 부석사의 조사당, 안동 봉정사의 극락보전 같은 조선 초기의 맞배지붕 겹처마에 주심포집인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단정하면서도 엄숙한 조선 선비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 극락보전 문살
▲ 아미타여래삼존좌상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 앞면에 그려져 있는 아미타삼존불벽화(국보 313호 )
1476년. 높이 320cm. 1950년 극락전 수리 공사를 하던 중 본존불 뒤쪽의 벽화 아래 서쪽에 쓰인 기문에 따르면 성종 7년(1476)에 후불벽화(後佛壁畵)가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를 대표할 만큼 뛰어난 아미타삼존좌상이 어느 때 조성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극락보전 안쪽 벽에 그려진 많은 벽화들을 1974년에 해체, 보수하다가 그 벽화들을 통째로 드러내 벽화 보존각을 지어 따로 보관하고 있다.
▲ 끝물인 상사와
▲ 명부전
▲ 무위사5층석탑
▲ 무위사선각대사탑비(보물 507호)
높이 250cm.
형미스님(864-917)은 통일신라말 고려초기의 명승으로, 무위사에서 주지로 8년간 머무르며 무위사 중창을 주도하였다.탑비는 귀부와 비신, 이수를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이다.귀부와 운용문이 있는 이수에 표현된 조각 수법은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비신 앞면은 형미스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최언위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글씨를 썼다.
▲ 월출산산신각
▲ 미륵전
▲ 미륵전 미륵
▲ 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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