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글/좋은 시

봄비 / 조병화

야생초요 2013. 7. 6. 05:23

 

    봄비 / 조병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온종일 책상에 앉아 창 밖으로 멀리
      비 내리는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노라면
      문득, 거기 떠오르는 당신 생각 희미해져 가는 얼굴
      그래,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실로 먼 옛날 같기만 합니다
      전설의 시대 같은 까마득한 먼 시간들
      멀리 사라져 가기만 하는 시간들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
      그 속에, 당신과 나, 두 점
      날이 갈수록 작아져만 갑니다

      이런 아픔, 저런 아픔 아픔속에서도 거듭 아픔
      만났다가 헤어진다는 거 이 세상에 왜, 왔는지?
      큰 벌을 받고 있는 거지요

      꿈이 있어도 꿈대로 살 수 없는
      엇갈리는 이 이승 작은 행복이 있어도
      오래 간직할 수 없는 무상한 이 이승의 세계
      둥우리를 틀 수 없는 자리
      실로 어디로 가는 건가

      오늘따라 멍하니 창 밖으로 비 내리는 바다를
      온종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왈칵, 다가서는 당신의 얼굴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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