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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10일 새벽 동아일보 앞 뜨거웠던 함성

야생초요 2006. 7. 2. 14:50
 



손기정 선생 가슴의 일장기가 지워진 1936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36년 8월 9일 밤 11시 2분. 서울은 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로 동아일보사(현 일민미술관) 앞에는 많은 시민이 우산을 쓴 채 몰려 있었다. 동아일보사의 스피커를 통해 세종로 사거리에 울려 퍼지는, NHK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라디오(JODK) 중계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계방송은 밤 12시가 되자 끊겼다. 4위로 달리던 손기정이 17.5km 지점을 막 지날 때였는데, 선두 자바라를 맹추격하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발을 굴렀다. NHK는 밤 11시와 오후 6시 30분 각각 1시간씩 하루 두 번밖에 올림픽 실황을 중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동아일보사 편집국은 기자들이 피워 댄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운동부 기자들은 전화통을 붙잡고 도쿄와 베를린에 선을 대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베를린 올림픽 취재반장 격인 이길용(1899∼?·납북) 기자가 가장 바빴다. 이 기자는 조선체육계의 마당발이었다. 키는 작달막하고 체구는 호리호리했지만 눈은 광채로 번득였다. 그는 이미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선 내일 아침 당장 호외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10일 오전 1시 30분. 동아일보사 앞에는 다시 많은 시민이 우산을 쓰고 몰려들었다. 손기정 소식이 궁금했던 것이다. 잠시 후 동아일보사 사옥 2층 창문에 한 여자가 나타나 “손기정 군이 2시간 29분 19초 올림픽 최고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남승룡 군도 3위로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그 순간 “와” 함성을 질렀다. 여기저기서 “손기정 만세, 남승룡 만세” 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내던져 버렸다. 누가 시킬 것도 없이 모두들 거리로 쏟아져 나가 “손기정 군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다”고 소리쳤다. 이들은 날이 새도록 서울 장안 곳곳을 누비며 목이 터져라 “손기정 우승”을 외치고 다녔다.

손기정 우승은 당시 일제 식민지였던 조선 땅을 한 달 내내 ‘기쁨의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조선 사람이면 누구나 손기정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워 버리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을 동아일보가 대신했다.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5일자에 실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 사진에서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버리고 내보낸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 체육기자 이길용, 사회부장 현진건 등이 투옥됐다. 동아일보는 조선총독부의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다. 배편으로 귀국하다 싱가포르에서 이 사건 전말을 전해 들은 손기정은 “나의 심경을 대변해 준 동아일보에 감사한다. 고초를 겪고 있는 기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