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글/좋은 시

종이배 사랑/ 도종환

야생초요 2017. 7. 4. 16:26


    종이배 사랑 / 도종환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이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낯선 섬의

    감탕밭에 묶여 있는 시간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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