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07.29. 벽파진 충무공 전첩비
벽파진(碧波津)은 진도대교가 있는 울돌목에서 동남으로 20리 정도 떨어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었던 나루터로 진도대교가 놓여지기 이전만 하더라도 진도로 들어오는 관문이었으며, 명량해협의 길목이기도 하다.
정유재란때인 1597년(선조30년) 7월 16일에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원균이 이끄는 조선 함대가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여 거의 전멸하게 되었다.
이때 조선 수군에 의해 방어되던 서해안 연안 항로와 이에 따라 전략적 요충지인 전라도가 위험에
빠지게 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조선 조정에서는 이항복의 건의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이순신이 다시 조선 수군을 모아 정비했을때는 군사 120명에 함선은 12척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전열을 재정비 하기 위해 8월 29일에 이곳 진도 벽파진으로 진을 옮겼다.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수군은 9월16일 12척의 전선(戰船)으로 적 함대 133척을 맞아 싸워
왜선(倭船) 31척의 적선을 격파하여 크게 이겼다 세계역사에 길이 남을 명량대첩(鳴梁大捷)의 승리를 거뒀다.
전첩비 옆 새우양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