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30. 율곡사
경남 산청군 신등면 율현리 1034
율곡사는 신라 경순왕 4년(930)에 감악조사(感岳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절이다. 절과 관련된 고려·조선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지만 현재의 대웅전은 2003년 해체과정에서 어칸 종도리 하부에서 “강희십팔년기미월일상량기(康熙十八年己未月日上樑記)”의 묵서명 기록이 나와, 조선 숙종 4년(1679)에 대대적으로 중수(重修)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쪽 문의 문살은 여러 문양으로 복잡하게 꾸며 건물에 더욱 다양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만들어 천장 속을 가리고 있고 불단 위쪽으로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놓았다.
산 속에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조선 중기 건물로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멋을 갖추고 있는 건축문화재이다.
[율곡사의 전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삼국시대인 651년(진덕여왕 5)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통일신라시대인 930년(경순왕 4) 감악조사(感岳祖師)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율곡사 대웅전을 중건 할 때인데 하루는 대목수 한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가 맡아서 짓겠다고 하였다. 절에서는 마침 목수를 찾고 있는 중이어서 몇 가지 물어보고 곧 일을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목수가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 목침(木枕)만 다듬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기다린 것이 석 달이 되어도 목침 다듬는 일만 하고 있기에 답답한 스님이 목수 몰래 다듬어 놓은 목침 한 개를 감추어 버렸다.
그랬더니 며칠 뒤에 느닷없이 목수가 연장을 챙겨서 공사를 중단하고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주지가 그 연유를 묻자, 다듬어 놓은 목침이 모자라니, 이러한 정신으로는 이 큰 불사를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떠나는 것이었다.
급한 김에 절이 발칵 뒤집혔는데 그 때 목침을 감추어 둔 스님이 와서 목침을 내어놓고 사과를 하니 그제야 목수가 말하기를, 아직까지 그렇게 정성이 부실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하면서, 다시 일을 시작하여 완공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율곡사를 ‘목침절’로 부르기도 한다.
새신바위
공사가 끝나고 단청을 할 때 일이다. 화공이 일을 하면서 대웅전 내부단청을 제일 뒤에 하게 되었는데 그때 스님들에게 이르기를 앞으로 7일 동안은 누구도 법당내부를 들여다보지 말 것을 누누이 당부하고 일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 번 안으로 들어간 화공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런 기척도 없이 6일이 경과 되었다.
모두가 궁금하게 생각되어도 화공의 당부가 너무 간곡했기에 들여다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 7일째 되는 날, 정오가 지나도 조용하기만 한 법당 안을 참다 못한 상좌승이 몰래 문에 구멍을 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안에서는 한 마리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갑자기 붓을 떨어뜨리고 문틈으로 날아서 절 위쪽에 있는 새신바위에 앉아 버렸다. 그 길로 새는 간 곳 없고, 바위 이름은 새신바위가 되었다. 법당의 그림에는 천정 밑 좌우 벽면에 산수화 그림 두 점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미완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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