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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장삼, 붉은 가사의 승무… 우리 무형문화재들

야생초요 2006. 7. 2. 14:01
 

흰 장삼, 붉은 가사의 승무… 우리 무형문화재들

2005 서울무형문화재 축제에서 선보인 살아있는 고유 문화

미디어다음 / 김지한 통신원  

 

문화재라고 하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문화재를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 무용, 연극, 놀이, 공예 기술 등 다양한 예술적 활동이나 기술들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보전되고 있다. 무형문화재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생활과 더욱 밀착돼 있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8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2005 서울무형문화재 축제가 열렸다. 여기서는 다양한 무형문화재 공연 및 기능 시범 등이 열려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축제에서 선보인 무형문화재들을 소개한다.


승무 (僧舞)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는 흔히 승려가 추는 춤으로 알려져 있지만 흰 장삼에 붉은 가사(중이 장삼 위에 입는 옷)를 매고 머리에는 흰 고깔을 쓰고 추는 민속춤이다. 승무는 리듬의 섬세한 표현과 춤사위의 오묘함이 조화된 매우 우수한 춤으로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높은 차원에서 극복하고 승화시킨 춤으로 평가 받고 있다. 기능 보유자 정재만 선생이 춤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처용무 (處容舞)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란 처용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을 말한다. 통일신라 헌강왕 때 살던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춤에는 음양오행설의 기본정신을 기초로 해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다.


태평무(太平舞)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다. 남녀가 왕과 왕비 복장으로 등장해 웅장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동작이 섬세하고 우아하며 겹걸음, 잔걸음, 무릎들어 걷기, 뒷꿈치 꺾기 등 다양한 발딛음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예능보유자 강선영 여사가 춤을 선보이고 있다.


봉산탈춤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황해도 봉산군에서 전래되어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탈춤이다. 서민들의 가난한 삶, 양반에 대한 풍자, 파계승에 대한 풍자, 여성의 억압된 삶 등을 보여준다. 봉산 탈춤은 다른 지역 탈춤에 비해 춤사위가 활발해 경쾌하게 움직이는 장삼 소매와 한삼의 움직임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강령탈춤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황해도 해주, 옹진, 강령지방에서 전래되어 온 탈춤으로 해서(海西) 지방의 대표적인 탈춤이다. 매년 단오에 펼쳐지며 탈의 모습이 사실적이고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북청사자놀음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 함경남도 북청 지방에서 정월대보름에 행하는 사자놀이이다. 사자에게는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잡귀를 쫓고 마을의 평안을 비는 행사로 전국에서 널리 행해졌다. 지방마다 여러 사자놀음이 있지만 북청 사자놀음은 춤사위가 다양하면서도 뛰어나 대표적인 사자놀음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들농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2호. 노원구 상계동 갈월 마을의 앞들인 마들에서 모심기와 김매기를 할 때 부르던 농요다.


남사당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는 꼭두쇠(우두머리)를 비롯해 최소 40명으로 이뤄진 남사당패가 농·어촌을 돌며 서민층을 대상으로 공연했던 놀이를 말한다. 남사당놀이는 서민사회에서 자연 발생한 민중놀이로 양반들에게 박대를 당해 마을에서 공연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남사당놀이-줄타기
남사당놀이에서 벌이는 종목 중 하나인 줄타기다. 줄 위를 마치 얼음지치듯 미끌어지며 나가는 재주라 하여 어름 또는 줄얼음타기라고도 한다. 외줄 위에서 줄꾼이 다양한 재주를 선보이고 구경꾼들에게 재미있는 말을 주고받는 것이 특징이다.


민화장(民畵匠)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8호. 민화는 생활 공간의 장식을 위주로 한 일상생활과 풍습에 따라 그려진 실용적 그림을 말하며 이런 민화를 그리는 사람을 민화장이라 한다. 민화는 조선 후기에 특히 일반민중이나 서민층의 그림으로 유행했다. 대부분 그림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무명화가나 떠돌이 화가가 그렸기 때문에 낙관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